• 미개인이 되고 싶어
  • 2023. 11. 26. 08:28

  • 일출이 7시 22분
    일몰은 16시 28분
    월출이 19시 04분

    강 수위는 정상

    -오늘도... 릴리엔탈 가를 걷던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인생의 허무를 느꼈어. 포츠담 가에서 자살하려던 남자가 이별의 편지에 기념 우표를 붙이고 마리안느 광장에서 미군과 영어로 대화했지. 학생시절 이후 처음인데 아주 유창하게. 죄수가 벽에 머리를 부딪치곤 이렇게 외쳤어 '지금!'이라고. 동물원 역에 도착하자 챠장이 갑자기 이렇게 외쳤지 '불의 섬'이라고. 노인이 '오디세이'를 읽어 줄 때 듣고 있던 아이는 눈을 한 번도 깜박이지 않았어. 자넨 어떤 이야깃거리가 있지?

    -한 여인이 비가 오는데 우산을 접더니 비를 흠뻑 맞았어. 한 학생이 선생에게 식물의 발생을 설명하여 감탄시켰지. 장님이 날 느끼더니 시계를 더듬거렸어. 영원히 살면서 천사로 순수하게 산다는 건 참 멋진 일이야. 하지만 가끔 싫증을 느끼지. 영원한 시간 속을 떠다니느니 나의 중요함을 느끼고 싶어. 내 무게를 느끼고 현재를 느끼고 싶어. 불어 오는 바람을 느끼며 '지금'이란 말을 하고 싶어. 지금, 바로 지금. 더 이상 '영원'이란 말은 싫어. 카페의 빈자리에 앉아 사람들에게 인사 받고 싶어. 고개만 끄덕일지라도.

    -악에 끌려 보는 것도 괜찮지. 세상의 모든 악령을 받아 들였다가 한꺼번에 내뱉는 거야. 미쳐 보기도 하고.

    -미개인이 되고 싶어. 책상 밑에서 신발을 벗고 발가락도 뻗고 싶고. 이렇게 말이야.

    -혼자가 돼 봐. 아니면 만사를 그냥 둬. 신중하게 생각해. 안 그럼 미개인이 되는 거야. 보고 모으고 증언하고 지키는 것만으로 족해. 영혼을 지니고 말조심하고 거리를 둬.

    /베를린 천사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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